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산문시는 서정시보다 운율을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운율을 중점으로 한 연구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산문시 중 『질마재신화』의 첫 장에 수록된 <신부>에 대해서 운율을 중심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작품 분석을 하기에 앞서서 서정주는
신화가 살아 숨쉬는 마을로 불멸화한다. 그 마을에 더도는 간통 소문, 오줌발 소리, 죽어 해일이 되어 돌아온 온갖 설화와 풍문은 신화 속에서 혼백과 육신을 얻고 현실의 공간 속에서 실재와 뒤섞인다. 『질마재신화』는 『화사집』에 이은 서정주 시의 또 하나의 찬란한 개화다.
이후의 작품들에 대
질마재’로 돌아간 미당의 삶을 다시금 거닐기 위해서는 시인의 첫 걸음에서부터 그의 여정을 되돌아보아야만 한다.
미당은 1941년「花蛇」,「自畵像」,「문둥이」등 총 24편의 시를 엮어 첫 시집인『花蛇集』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1941년 발행된 서정주의『花蛇集』을 다시 文學思想史 資料調
서정주 시선』을 출간해 자기 성찰과 달관의 세계를 동양적이고 민족적인 정조로 노래하였고, 이후 불교 사상에 입각해 인간 구원을 시도한 『신라초』(1961), 『동천』(1969), 토속적·주술적이며 원시적 샤머니즘을 노래한 『질마재신화』(1975)와 『떠돌이의 시』(1976) 외에 『노래』(1984), 『팔할이 바
질마재신화 외에 저서로 시 창작교실, 시문학개론, 한국의 현대시 등이 있다.
2. 미당 서정주의 서정시
견우의 노래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몰살 몰아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서정주시선』의 <국화 옆에서> 등등이 음률지향적이다. 이에 비해 『자화상』 같은 시들은 산문지향의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질마재신화는 이전의 것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즉 이들 시편들은 소재 자체가 벌써 산문의 옛적 고유 영역이다. 그리고 이 점은 그의 후기 작품들에 대하여
서정주연구』(새문사, 2005), p.1
미당은 1935년 《시건설》이란 잡지에 ‘스물세햇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로 널리 알려진 시 <자화상>을 발표함으로써 시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시적 여정의 본격적인 시작은 193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면서부터다.
I. 서 론
1. 서정주의 성장배경
1915. 5.18.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질마재 마을에서 출생. 호는 미당(未堂:아직 성숙하지 않았다.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다 는 뜻). 다츠시로 시즈오는 그의 창씨개명 한 이름. 일제 시대 창씨개명 해 근대교육을 받은 아버지 덕분에 비교적 유복하게 학문에 정진할
Ⅰ. 서정주의 생애
서정주는 1915년 5월 18일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질마재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호는 미당(未堂:아직 성숙하지 않았다.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다 는 뜻)이다. 1922년에서 1924년까지 고향의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한 후, 1929년에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에 보결로 입학한 후 2학
서정주, 김춘수, 김수영, 박재삼, 박남수. 김광섭을 중심으로 당시의 다양한 시단 경향을 논할 것이다.
Ⅱ. 제 5장 3절. 진실과 그것의 탐구로서의 언어
해방 후의 한국 시는 식민지 시대보다 두 가지 면에서 외적 자유를 누린다. 그것은 외면적인 검열 제도의 철폐와 한국어의 자유스러운 사